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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식 먹으면 왜 살찌나? 비만은 '생체 리듬'의 문제… "생활습관 교정이 해답"
늦은 밤까지 스마트폰을 보다 잠들고, 바쁜 하루 끝에 야식으로 허기를 달래는 생활은 현대인에게 익숙한 패턴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상이 반복되면 단순한 피로를 넘어 몸속 생체 리듬(circadian rhythm)을 서서히 무너뜨릴 수 있다. 생체 리듬은 24시간 주기로 수면, 체온, 혈당, 호르몬 분비 등을 조절하는 신체의 기본 시간표이자 모든 대사 기능의 '원본 설계도'와 같다. 이 리듬이 깨지면 인슐린·코르티솔·멜라토닌 같은 호르몬의 주기가 흐트러져 지방은 더 쉽게 저장되고, 에너지 소비는 줄어드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특히 늦은 밤 활동과 야식은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해 혈당 조절 능력을 떨어뜨리고 내장 지방을 빠르게 증가시키는 대표적 요인이다. 최근 연구에서도 "무엇을 먹느냐보다 언제 먹느냐가 비만·대사질환 위험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기도 했다. 이에 가정의학과 신은진 교수(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는 "비만은 단순히 열량 문제를 넘어, 깨진 생체 리듬에서 비롯되는 대사 질환"이라며 "생활 패턴이 불규칙해질수록 지방이 축적되는 속도도 더욱 빨라진다"고 강조한다.
생체 리듬이 깨지면 몸에서 벌어지는 변화
가장 먼저 영향받는 호르몬은 멜라토닌이다. 멜라토닌은 단순히 잠을 유도하는 호르몬이 아니라 지방을 태우는 '갈색 지방'의 활성화를 돕고, 인슐린 감수성을 조절해 대사 균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신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늦은 밤까지 스마트폰 화면을 보거나 강한 빛에 노출되면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된다. 이로 인해 수면 질이 낮아질 뿐 아니라, 밤 시간대 낮아진 인슐린 감수성과 맞물려 지방 축적이 더 빠르게 이루어진다.
수면 부족도 비슷한 악영향을 준다. 잠이 충분하지 않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장시간 높게 유지되는데, 이 상태가 지속되면 복부 내장 지방이 증가하고 혈압·혈당 조절 기능까지 흔들린다. 또한 수면 부족은 포만감을 유도하는 렙틴을 감소시키고, 식욕을 유발하는 그렐린을 증가시켜 고지방·고탄수화물 음식을 더 찾게 만드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아침에는 저녁보다 식사 유발성 열 생산이 약 2배 높아 에너지 소모가 더 활발하게 일어난다. 이는 '무엇을 먹느냐' 못지않게 '언제 먹느냐'가 체중 증가와 대사 건강에 중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사회적 시차' 대사 기능 망가뜨리는 주요인
이러한 생체 리듬의 취약성은 야행성(夜行性) 생활 패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전문가들은 개인의 생체 시계(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싶은 패턴)와 사회적 시간표(출근·등교 등) 간의 불일치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시차(social jetlag)'가 만성적인 수면 부족을 낳는다고 설명한다. 신은진 교수는 "야간형 생활은 렙틴·그렐린·코르티솔 같은 대사 호르몬의 균형을 더 크게 흔들어 식욕 조절을 어렵게 만들고 지방 축적을 촉진한다"며 "밤늦게 먹고 늦게 잠드는 패턴이 지속되면 대사 기능이 정상으로 회복되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대사 기능 회복을 돕는 '시간제한 식사'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주목받는 것이 시간제한 식사(Time-restricted eating)다. 하루 중 6~10시간만 음식을 섭취하고 나머지 시간은 공복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이미 여러 연구에서 체중 감소와 혈당 개선 효과가 확인됐다. 특히 식사 시간을 아침·점심 중심으로 앞당기면 생체 리듬과 일치해 대사 효율이 더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신 교수는 "과도한 단식은 오히려 근육량 감소를 유발할 수 있어 충분한 단백질 섭취와 규칙적인 근력운동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생체 리듬 회복을 위한 생활습관 교정 필요
이처럼 생체 리듬이 깨지면 호르몬 균형과 에너지 대사가 무너지면서 체중 증가·대사질환 위험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흐트러진 생체 시계를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체 리듬을 회복시키는 생활습관 교정에 있다.
생체 리듬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우선 수면 패턴을 규칙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 7~8시간의 충분한 수면을 확보하고, 잠들기 전에는 스마트폰·TV처럼 강한 빛을 내는 기기 사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난 뒤 30분 이내에 자연광을 쬐어주는 것도 생체 시계를 리셋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식습관 역시 리듬 회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 기상 후 1~2시간 안에 아침 식사를 하고, 하루 총열량의 절반 이상을 아침과 점심에 배분하는 것이 좋다. 반대로 잠들기 3~4시간 전부터는 음식 섭취를 피해야 한다. 이는 야간에 불필요한 혈당 상승을 막고, 멜라토닌 분비가 방해받지 않도록 돕는다.
활동 습관도 조절이 필요하다. 낮에는 가능한 한 햇빛을 충분히 받는 것이 좋고, 밤에는 실내조명을 최소화해 몸이 자연스럽게 휴식 모드로 전환되도록 해야 한다. 운동은 건강에 유익하지만, 늦은 시간에 격렬하게 운동하면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수면을 방해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신은진 교수는 "해가 떠 있을 때 먹고, 해가 지면 쉬는 원초적인 생체 리듬의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 비만·대사질환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며 "생활 시간표를 규칙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어떤 다이어트보다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